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엄청난 설화사건이 발생한다.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이란 사람이 사건의 장본인이다. 어느 대학생 시민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인들은 투표 안 하고 집에 가서 쉬셔도 된다. 이제는 20-30대의 무대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가 한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내용이다. 문제의 막말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곧 이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 선거지형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후폭풍이 불어 닥친다. ‘노무현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절대적인 강세를 즐기던 열린우리당은 갑자기 큰 타격을 받는다. 설화의 주인공은 당의장은 물론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까지 사퇴하며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주홍글씨’처럼 자신에게 깊이 새겨진 오명을 끝내 지우지 못한다.

얼마 전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소속의원 한 사람이 메가톤급 설화를 일으킨다. 남녀 대학생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좌충우돌 막말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가 날린 막말은 비수가 되어 여성, 특정 직업, 동료 의원, 대통령 부부 등에까지 상처를 입힌다. 한나라당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성토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한다. 이런 와중에 설화를 일으킨 당사자가 온전할 리 만무하다. 즉각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제명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사형선고를 당한다. 설상가상 민형사상의 고소가 이어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라는 여론이 빗발친다. 본인은 무작정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수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통할 리가 없다. 막말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만,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도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설화사건은 정치권에서는 사례가 아주 많아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 설참신도(舌斬身刀)’라는 경구가 있다.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말조심을 하지 않아 망신을 당하는 모습이 허다하다. 하지만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한 영원히 입을 닫고 혀를 감추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경구가 생겨난 것 같다. ‘세 번 신중하게 생각한 연후에 한 번 조심해서 말하라’는 뜻이다. 사실 살다보면 덜렁 말을 해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말만 제 때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지나치고 넘치는 경우도 많다. 오해 없이 소통이 잘 되려면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중요하다. 특히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려 국정을 잘 돌봐야 하는 정치지도자일수록 말하기보다는 듣기 비율이 높아지면 좋겠다.

cnb국회방송 논설위원/안상정

안상정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