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이던 1910년 8월 22일 오후 5시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조선주재 일제 통감 데라우치를 제 발로 찾아간다. 조선의 영토와 백성을 공식적으로 일제에게 양도하는 ‘한일병합늑약’에 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로써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지 518년 만에 패망한다. 이 치욕적인 사실은 극비에 붙여져 있다가 1주일이나 지난 8월 29일에야 정식으로 공포된다. 조선 민중들의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우리는 8월 29일을 국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날로 보고, 그 날을 ‘국치일(國恥日)이라 부른다. 하지만 날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미 우리나라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통해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다. 굳이 따진다면 8.29 국치일은 껍데기만 남은 국호마저 완전히 잃은 날이라 할 것이다. 쓸개 빠진 매국노들이 더 판을 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공로로 72명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슬프고도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의 만행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다. 심심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댄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울화가 치밀어 소리 높여 규탄하지만, 일본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들이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고집하고 우리나라를 업신여길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까지 월등하게 앞서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은 6배나 되고, 공군력과 해군력도 5배가량 강하다. 그래서 구호뿐인 ‘반일’(反日)보다는 실천하는 ‘극일’(克日)이 중요한 것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우리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지난 한 세기를 돌이켜 반성하고 또 다짐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슬프고도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돌보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광복절과 국치일이 함께 들어 있는 8월이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여름휴가 다녀오고, 나라사랑을 떠올리는 시간도 가지면 좋겠다.

논설위원/안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