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영국인으로부터 참한 캐나다아가씨를 소개받았다. 가끔씩 내가 맡고 있는 영어마을에 와서 도와주기로 약속하고 우리나라에 온지 5개월밖에 안된 그녀에게 구미 시내를 안내하겠다며 함께 나갔다.
구미에 살고 있으면서도 시내를 둘러보기는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술집으로 가득했던 거리는 가게로 채워졌고, 한때 자주 갔던 피자가게도 이사를 했다. 토요일오후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녔고 서울에서 자주 들리던 커피전문점이 구미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내 중앙시장도 한바퀴 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우리가 들린 가게에는 가격이 붙어있지 않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고 그녀는 이미 한국식 판매형태를 파악한 듯 만약 혼자 다녔다면 가격이 훨씬 더 비쌀 것인데 오늘은 나와 함께 다녀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그녀는 물건 값을 하나씩 물으며 다른 가게와 비교하면서 모자와 머플러를 샀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어 나에게 보였다. 겉에는 ‘shopping’이라 적혀 있었고 그녀는 매월 수입 중에서 생활비와 쇼핑 봉투를 각각 만들어 봉투에 들어있는 돈만 쓴다고 했다.

철저한 그녀의 경제관념에 잠시 나의 20대 시절을 떠올려봤다. 그래, 나도 한때는 식빵을 하나사서 일주일식량으로 나누어서 하루에 한 개반 토스트를 먹었던 적이 있었지.....

그녀는 대학등록금 대출을 갚기 위해 매월 일정금액을 본국의 은행으로 송금하면서도 이렇게 쇼핑도 즐기고 또 다음 달에는 태국으로 며칠간 여행도 떠난다고 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왜 그리도 여유없이 20대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대학에서 나와 바로 직장을 구한 나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연장근무를 했고, 그때 번 돈으로 처음 작은 TV 하나 샀을 때는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생활비에 빠듯하여 휴가는 상상도 못했던 때였다.

거리를 내려다보는 큰 창가에 앉아서 커피도 즐길 줄 아는 그녀의 여유가 부러웠다. 그녀에게 시내를 안내하겠다고 나선 오후였지만 오히려 내가 새로운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따뜻하게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한국엄마라며 따르는 그녀는 마치 30년 전 나를 보는 듯했다.

최윤희 / 논설위원.1대학교수.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여성회장.

최윤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