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중근 의사는 순국 당시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고 마지막으로 유언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뤼순감옥 뒤편 공동묘지 어느 곳에 감쪽같이 매장합니다. 안 의사 묘소가 생겨나면, 그 곳이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까봐 두려워서입니다.

해방 직후 김구 선생이 안 의사 유해를 찾아 효창공원에 모시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무위에 그칩니다. 무려 60년이 또 흘러 지난 2008년부터는 남북정부가 공동 발굴작업에 본격 나서지만,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친 위인에게 순국 100주년이 넘도록 영면할 안식처를 마련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반면 안 의사가 처단한 일제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죽어서도 갖은 호사를 누립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지고, 공작 작위에 충정공이라는 시호까지 받습니다. 도쿄 시내 1500여평의 땅에 마치 왕릉처럼 호화스런 묘역이 조성되어, 지금까지 줄곧 정부의 특별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너무나 기막힌 일이 벌어져 억장이 무너질 지경입니다. 이토의 외고손이라는 자가 외상으로 출세한 것도 모자라 “독도는 일본 땅이니 독도에 대한 공격은 일본에 대한 공격이다.”운운하며 망언망동을 일삼고 있으니 말입니다.

수많은 우리 국민들이 사무치는 구원(舊怨)에도 불구하고 지진 피해를 당한 일본에게 성금에다 구호작업에다 지원을 아끼지 않는 와중이라서 더욱 참담한 심정입니다. 안 의사의 혼백이 만주 어느 곳 지하에서 얼마나 가슴을 치며 탄식할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송구스런 일입니다. 정녕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인 모양입니다.

1909년 초 연해주에서 안 의사는 조국독립을 위해 죽음을 불사해 끝까지 투쟁하리라 맹세하고, 왼손 넷째 손가락(약지)의 한마디를 잘라냅니다. 이후로 안 의사는 자신이 작성한 문건에는 어김없이 도장 대신 손바닥 도장(수인)을 찍고, 그 옆에 ‘대한국인 안중근’이라고 서명을 합니다. 약지가 새끼 손가락만큼 짧게 찍힌 안 의사의 수인보다 더 강력한 불굴의 의지가 담긴 표식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나마 안 의사의 수인이라도 민족혼의 상징으로 남아있어 천만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제의 만행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고, 일제의 망령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안 의사가 남긴 수인의 의미를 영원히 명심해야 합니다.


안상정 논설위원

안상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