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표, 지난 전당대회 경험 언급 "조직이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강조
15일 민주당 추미애, 박영선 의원의 잇단 출마 선언으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향한 민주당 후보 경선이 우여곡절 끝에 '4파전(박영선·신계륜·천정배·추미애)'으로 압축됐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돼 오세훈 시장이 사퇴했을 당시만 해도 민주당의 자천타천 후보가 10여명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단촐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컷 오프(예비 경선)'를 고민했던 민주당은 9월초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업은 박원순 변호사의 등장에다 추석 연휴 막바지에 터진 한명숙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경선 자체가 무의미해 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초라해진 민주당 경선을 놓고 여기저기서 '마이너 리그','그들만의 리그'라는 비아냥도 흘러나왔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손학규 대표는 누구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한 전 총리가 불출마 선언을 했던 13일 손 대표는 박영선, 원혜영 의원과의 접촉에 들어갔다.

박영선, 원혜영 의원은 당초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한 전 총리가 출마할 경우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한 전 총리가 불출마 의사를 밝혔으니 '출마를 해야한다'고 설득에 나선 것이다.

먼저 손 대표는 원혜영 의원에게 출마를 타진하는 전화를 3~4차례 했지만 원 의원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고사했다.

박영선 의원에게는 20통에 가까운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후 늦게 겨우 통화에 성공한 손 대표는 박 의원에게 "오늘 만나자"고 제의했지만 박 의원은 손 대표의 의중을 눈치채고는 손사래를 쳤다.

민주당 후보등록 첫날이었던 1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는 "민주당에서 기존에 출마를 표명하신 분들을 포함해 훌륭한 지도자들이 당내 경선에 적극 참여해주기를 기대한다"며 "민주당 없이는 서울시장 선거 승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영선, 원혜영, 추미애 의원을 향해 던진 '러브콜'이자 '절박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14일 밤에 이뤄졌다. 이인영 최고위원, 우상호 전 의원 등은 박영선 의원을 여의도의 한 중식당으로 불러내 "조직원이라면 본인의 득실을 떠나 조직이 어려움이 있을때 역할을 해야하고 그렇게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고 조언했다.

우상호 전 의원은 "진솔한 대화가 오갔지만 결국 시간이 너무 없어서 나중에는 압박 수준의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며 "묵묵히 얘기를 듣던 박 의원은 2~3차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같은날 밤 10시 손학규 대표는 여의도 렉싱턴호텔의 한 식당에서 추미애 의원과 독대를 했다. 이 자리에서 추 의원은 "경선을 치를 조직도 없는데다 '노조법'으로 당에 오해를 불러와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고 처지를 설명했다.

이에 손 대표는 "'추미애노조법'은 내가 춘천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 잘 몰랐는데 당 대표가 되서 원내에 들어와보니 '추미애 노조법은 잘 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의원들이 많았다"며 "노조법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는 추 의원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손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때도 나보고 나오지 말라고 춘천에까지 찾아와 만류하는 의원들이 많았지만 '결단'을 내려 전대에 임했고 결국 승리를 거뒀다"며 "조직이 민심을 이기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또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추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중에 1등인데 출마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민심을 보고 당당하게 나와달라. 이게 추 의원의 길이 아니었나. 같이 당을 살려나가자"고 주문했다.

2시간 가량 이어진 회동이 끝났을 때에는 손 대표와 추 의원이 격려의 포옹을 할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 추 의원의 마음을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은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이었다. 추 의원은 15일 서울시의회 의원들과의 오찬회동 직후 민주당 경선 후보 등록을 마쳤다.

전날 오후 '번개 미팅' 형식으로 모임을 추진한 탓에 참석 인원이 10여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30명이 모여 추 의원을 놀라게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바른 시장을 한번 모셔보고 싶다", "추미애 시장 앞에서 제대로된 시정 질의를 하고 싶다", "올곧게 살아온만큼 앞으로도 '정도(正道)'를 걸어달라"는 주문을 했고 이에 추 의원은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이동근 기자

이동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