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개병제’의 전통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은 고관대작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게 병역의 의무를 지는 국민개병제 국가로 출발했다.

다만 신분제 사회라서 왕족과 공신, 특수 직역에 종사하는 천민은 병역에서 제외됐을 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국민개병제는 제대로 실현되어 정착되지는 못했다.

중기, 말기로 가면서 양반은 사실상 병역에서 제외됐고, 갖가지 병역을 둘러싼 비리가 창궐했다. 국민개병제의 문란이야말로 조선이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에 시달리고 결국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패망하게 된 주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금 대한민국 역시 국민개병제 국가이다.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강제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즉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신체, 정신 모두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병역 복무를 강제로 명령해 집행하고 있다.

여성과 건강에 하자가 있는 남성을 강제징병에서 제외하는 것은 그래도 병력수급에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강제징병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숙명처럼 지고가야 할 제도이다.

그러면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강제징병제는 별 문제 없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소위 학벌 좋고 돈 많고 출세한 사람일수록 자신이나 그 가족이 병역을 면제받은 사례를 쉽게 목격하니 말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경우 월등히 높은 병역면제비율이 통계상으로도 확인되어 더욱 그렇다. 지난 정권 어느 시점에서는 대통령, 총리,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원장 등이 모조리 병역면제자인 적도 있었다.

이러니 시쳇말로 힘 없고 빽 없어 군대간다는 식의 자조의식까지 만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병역과 관련한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는 한 통합과 신뢰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얼마 전 다른 이도 아닌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군필자에 대한 예우와 대우를 강조해서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리 정치지도자 중에도 조 장관처럼 대승적인 사고와 안목을 가진 이가 있나 싶어 반가울 정도이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다한 자랑스런 내 아버지, 내 남편, 내 아들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 장관이 제시한 군필자 전체에 대한 경력인정과 정년연장 역시 정답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면 적어도 그 기간만큼 경력으로 인정하고 정년을 연장해줘야 마땅하다. 모쪼록 군필자에 대한 경력인정과 정년연장이 하루속히 법제화되기를 바란다. 군필자가 정당한 예우와 대우를 받게 된다면 병역회피 풍조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