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여성, 名義 도용해 수입품 들여와 파는 인터넷 밀수 -'

분산 밀반입' 해마다 급증 화장품서 임신 테스트기까지 1명 1제품은 비과세 적용 노려 젊은 여성들이 주로 범행.허술한 법망최종 수령자 확인 어려워 분산 밀반입 적발 쉽지 않다는 것을 악용했다.

이달 초 인천공항 세관은 수입품 밀반입 혐의로 부산에 사는 김모(33)씨를 고발했다. 범죄 전과가 없는 김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신종 밀수꾼'으로 변신했다.

김씨의 밀반입 건수는 2009년부터 작년 말까지 1만4134건. 하루 평균 10개씩 유아용품·화장품 등을 국내에 몰래 들여온 셈이다. 총 5억9000만원어치다.김씨의 밀수 방식은 인터넷 주문이었다.

수입품을 국내로 들여올 때, 한 명당 한 개의 물건은 '자가소비용'으로 분류돼 가격이 15만원(미국산은 200달러)을 넘지 않으면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했다.

무려 320여명의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여러 주소로 물건을 주문한 후, 택배회사 직원과 아파트 경비원을 포섭해 모든 물건을 자신이 수령했다. 김씨는 이렇게 세금을 내지 않고 들여온 물건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시중 가격의 반값에 팔았다.

김씨가 운영하던 카페는 비공개로 운영됐고 가입 절차도 까다로웠지만, 수입품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회원 수가 2000명을 돌파했다. 김씨의 밀수는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 수백명이 같은 제품 수천 개를 주문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세관 직원이 조사함으로써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매한 물건이 1개면 상표법이나 저작권법의 제재도 받지 않는다. 모조 물건이라도 1개만 들여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다른 사람 명의 수십, 수백 개를 도용해 수입품을 들여오는 '분산(分散) 밀반입'은 해마다 늘고 있다.

작년에 적발된 것만 113건으로 2011년(53건)의 두 배가 넘었다.최근 3년간 적발된 분산 밀반입 178건의 피의자 중 70％는 여성이었고, 이 중 대부분이 30대 이하였다. 인터넷 주문에 익숙한 젊은 여성들이 이 수법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화장품 600여개를 분산 밀반입해 되판 이모(38)씨, 미국산 임신 테스트기 300여개를 분산 밀반입한 박모(33)씨는 지난달 세관에 적발돼 고발조치됐다. 모두 30대 여성으로 초범이었다.전문 밀수 조직이 분산 밀반입을 활용한 사례도 있다.

작년 초 시가 27억원 상당의 다이어트 식품을 2만명 명의로 들여온 일당이 붙잡혔다. 또 최근에는 밀수 조직들이 중국산 모조 명품을 분산 밀반입 방식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중국의 모조품 제조업체에 모조 명품 수백 개를 주문하면, 중국에서 해킹 등으로 미리 확보한 개인 정보를 이용해 제품에 각각 다른 이름과 다른 주소 수백 개를 적어 국내로 배송한다.

이때 택배 송장(送狀)에는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기고, 택배회사가 물건을 접수하면 배달하기 전에 물건을 따로 빼돌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운송업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물건을 한데 모으는 게 어렵기 때문에, 세관은 택배회사들도 조사하고 있다.

세관에서는 지난해 적발된 분산 밀반입 113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 주문으로 인천공항에 들어온 국제 특송 우편물은 지난해 719만개로 2010년부터 매년 40％씩 늘고 있다. 분산 밀반입품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세관 관계자는 "인터넷 주문이 아닌 일반 특송 우편물까지 포함하면 작년 한 해 1129만개, 하루 평균 3만개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분산 밀반입을 가려내는 건 매우 어렵다"며 "적발되는 건 전체의 5％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은 국제 특송 우편물의 최종 수령자 정보를 운송 업체가 전산화해 제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수령자를 역추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령자의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이 있고, 운송 업체들도 영업 비밀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법 개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 형곤 보도2국장

김 형곤 보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