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고조 유방은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전략의 귀재 장량, 행정의 달인 소하, 병법의 천재 한신 등 훌륭한 인걸들을 잘 부려서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유방 주변에는 이 밖에도 지략의 진평, 전술의 조참, 주발, 무예의 번쾌, 팽월 등등 뛰어난 부하가 즐비하다. 심지어 수레를 기가 막히게 잘 모는 하후영은 유방을 그림자처럼 수행해 공을 세운다.

기실 유방은 성공한 인사(人事)로 성공한 리더가 된다. 무엇보다 신분 그리고 전력을 따지지 않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탁하고 포용한다. 장량만이 이름난 귀족이지 나머지는 제다가 천민, 평민 출신이다. 하급관리, 건달, 부랑자, 나팔수, 돼지백정, 산적 등이 그들의 전력이다.

과거 패륜, 패악질을 일삼아 손가락질을 받은 자도 상당수이다. 분명한 상벌도 한 몫 한다. 성을 뺏은 자에게는 그 성을 주고, 땅을 취한 자에게는 그 땅을 준다. 불가항력의 패전에는 너그럽지만, 군기가 바르지 못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박근혜정부가 인사 때문에 출범부터 난항이다. 고위 공직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자 지지율이 떨어지고 시급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데 애를 먹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지난 정부에서의 난맥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지연, 학연에 따른 편파인사를 자행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부수적으로 갖가지 흠결이 드러난 경우 역시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연, 학연에 따른 편파인사 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과 동향, 대통령과 동문이라고 해서 우대한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 대단한 진전이고 쇄신이다. 다만 전문성, 그리고 국정철학에 역점을 두다보니 이곳저곳 세부검증이 미흡해 여러 사단이 벌어진 것이 유감이다.

말이 쉽지 사람을 골라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난세가 아니라 치세라서 더욱 그렇다. 유방은 누구든 능력만 있으면 골라 썼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도덕성까지 겸비한 보다 완벽한 인재를 골라 써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 시스템을 통해 눈과 귀를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을 두루 살펴보고 많은 이들의 얘기를 새겨들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편파인사를 근절하고 더 나아가 엄정한 인사원칙을 확립하는 위업을 이루기를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할 수 있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