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회갑이 되던 해 안연(顔淵)이 31세로 요절한다. 워낙 허약한데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병구완을 제대로 못해서이다. 공자는 가장 아끼던 제자의 주검 앞에서 슬픔과 회한에 몸부림치며 이렇게 울부짖는다.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안연은 나를 어버이처럼 섬겼거늘 나는 그를 자식처럼 보내지 못했도다.” 공자뿐만 아니라 동서양 모든 성현들이 끔찍하게 제자를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석가모니가 그렇고 예수가 그렇고 소크라테스가 그렇다. 그런 위대한 스승 아래 뛰어난 제자들이 길러져서 인류가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요즘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어느 TV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허준의 일대기는 이미 예전에도 여러 번 제작된 적이 있는데, 그래도 매번 재미를 넘어 감동을 주는 대목이 있다. 바로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보여주는 헌신적인 제자사랑이다.

유의태는 허준에게 의술보다는 지혜와 신의를 더 우선해서 가르친다. 그는 위암으로 쓰러지면서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해부해서 만병의 원인을 찾아보라고 유언한다. 당시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인체 해부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제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간 것이다. 명의 허준은 스승의 지극정성 가르침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가 있어 자식이 있듯이 스승이 있어 제자가 있는 법이다. 부모가 자식을 통해 핏줄을 잇듯이 스승은 제자를 통해 학문과 덕행을 대대로 이어준다. 그래서 ‘사제삼세’(師弟三世)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전세 현세 내세 3세에 걸치도록 깊고 깊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리는 미덕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아서야 반짝 행사를 가질 뿐 진정으로 스승을 받들고 존대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스승이라는 존재는 세월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인 지주이다. 그런 귀중한 존재를 잃어가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스승을 예우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