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전 아르헨티나는 드넓은 ‘축복의 땅’이었다. 땅 속에는 무진장한 광물자원이 묻혀있고, 땅 위에는 품질 좋은 농축산물이 넘쳐났다.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국민소득은 어느 선진국에 뒤지지 않았다. 당시 이민 희망자들이 아르헨티나와 미국이라는 두 신흥대국을 놓고 어디로 갈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영광은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1930년대 밀어닥친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대명사격인 ‘페론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군 출신인 후안 페론은 쿠데타로 집권하자 노동자 임금을 대폭 올려주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의 인기영합 정책에 몰두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처럼 부인인 에바 페론 역시 사실상 복지부 장관 역할을 수행하며 남편을 거들었다.

복지라는 미명 하에 무려 4천개가 넘는 병원과 8천개가 넘는 학교를 설립했다. 조금만 내도 엄청나게 많이 받는 연금제도를 도입했고, 대중에게 거의 무제한으로 싼 이자에 돈을 빌려주었다.

페론 부부는 ‘빈민의 어버이’로 추앙받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감당 못할 재정적자, 살인적인 물가상승 등 부작용으로 인해 순식간에 추락했다.지금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 포퓰리즘의 망령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갑자기 무조건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이런 기상천외한 묻지마식 복지정책이 과연 유례라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공무원연금 등 각종 연기금을 어떻게 수술해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마땅한 해법이 없어 야단이다. 그뿐인가? 소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비용분담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교육청 간에 큰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다.

그만큼 쓸 데는 많고 쓸 돈은 태부족이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어쩌자고 책임이 막중한 정치권에서 갈수록 더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이 제기되고 있는 것인지 참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은 마치 아편과 같아서 한번 중독이 되면 끊기가 아주 어렵다. 달콤한 맛을 내는 공짜복지는 근로의욕과 정신건강마저 좀먹는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주의를 추종하는 정파가 집권하고 있다.

나라살림은 거덜이 나 해마다 구제금융을 기다리는 처지이지만, 대중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복지를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대한민국이 그 꼴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제발 정치권이 정신 차리고 국가 백년대계를 숙고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