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에는 뜻이 있다. 올바로 쓰인 언어는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매우 어색하고 불쾌하다. 나아가 엉뚱한 오해까지 불러일으킨다.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파이팅(fighting)'은 '싸우자'라는 뜻이다. 경기장 내에서 '싸우자'라는 과격한 말을 외치는 한국 사람들이다. 이방인 그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이팅'이라는 말은 그 진의가 무엇이 됐든 한국 내에선 오래 전부터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나 수험생 등에게 응원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애용돼 왔다.

그리고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드러났다. 오늘날 한국은 그 위상에 걸맞게 국내외를 넘나들며 국제 행사를 많이 치른다. 한국인들이 외치는 저 '화이팅'이란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출정식이라도 하듯이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주먹을 내지르며 구호를 외치는 것과 너무나 닮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아닌 경기장에서조차 저토록 살벌한 응원 구호를 외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원래 평화를 사랑한다는 한국인들이 왜 저토록 살기가 느껴지는 전투적 응원 구호를 외친단 말인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

우리는 운동뿐만 아니라 수험생 등힘을 보태고 격려할 모든 대상에게 늘 '파이팅'을 건넨다. 이처럼 왜곡 변형된 외래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영어권에서 이해 못할 전투적인 말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실상 외래어는 그 의미는 알지만, 정확한 어원을 잘 모르고 사용한다.

파이팅'보다는 우리의 순수한 말 '아자'가 얼마나 애정 있고 좋은 말인가. 운동경기 등에서도 파이팅이라는 말 보다는 "go"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도 나도 "파이팅"을 외친다.

싸우자"는 뜻의 어의가 "잘해보자"는 뜻으로 어의가 전성되어 우리 나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끼리 알아듣고 우리끼리 쓰겠다는데 뭐 어떻단 말인가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서 외국인들이 그런 말 들으면 깜짝 놀란다. 세계와 소통이 단절되어 우리만 살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말들을 여과 없이 우리가 외국인들과 소통하는데 사용한다고 가정해보라. 그들이 우리의 호전성에 얼마나 놀라겠는가 우리는 오늘날 전 세계 71억 인구가 보고 듣고 즐기는 월드컵과 같은 국제 행사를 치르고 또 참여한다. 세계무대를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작 세계인 당사자들은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가 외치고 있는 '화이팅'이라는 단어를 스포츠경기에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어길 때에는 혼란이 일어난다. 순 한국어로 할 경우 이미 알려진 대로 '아자 대한민국' 혹은 '한국 이겨라!'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우물 안 사고의 틀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 더 이상 세계인들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교육계는 물론 한국인 대부분은 이 같은 표현은 분명 잘못된 영어 어법, 즉 콩글리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고칠 생각은 없다.

한국인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한 마디로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똑똑하고 학력 또한 최고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순의 극치는 바로 우리들의 안방에서 수시로 목격된다. 바보상자 TV 바로 이곳에서 이 같은 현상이 태연히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골든벨을 울려라'를 예를 들 수 있다. 참여하는 학생들도 그렇지만 더 가관인 것은 명색이 엘리트요 교육자인 아나운서와 교사 그리고 하물며 교장 선생님들조차도 아무 거리낌 없이 '화이팅'을 외친다.

배우는 학생들이 그렇다고 하면 바로 잡아 주기라도 한다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저러하니 감히 누가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웃지 못 할 모순적 현상이 도를 넘는다.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면, 고쳐야 마땅하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


부산방송 / 홍윤성 편집국장

홍윤성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