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차관들과의 국정토론회에서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공직사회 부정과 비리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부패와 비리, 관료주의와 부처 이기주의, 무사안일 등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당초 청와대 참모들이 준비한 원고에는 이날 토론 주제였던 서민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전부였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공무원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데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문제가 된 국토해양부 '목금 연찬회'를 거론하며 "국토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데가 그랬다"며 "법무부 검사들도 그랬지 않으냐. 저녁에 술 한잔 얻어먹고 '이해관계 없이 먹은 거니 아무 문제 될 것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교육부 공무원들은 과장만 되면 대학 총장들 오라 가라 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원로회의를 해보니 '국민들에게는 온통 썩은 나라처럼 보인다'고 하시더라. 공무원이 부패한 듯하고…"라며 "이번을 기회로 삼자. 정부가 이번 기회를 관행적 부정과 비리를 청산하는 계기로 만들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당면한 혼란스러운 일을 보면 국민들께선 아주 당혹스럽고 걱정을 많이 한다"면서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냥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같이 보일 것이고, 오랫동안 잠재됐던 것들이지만 공정사회란 새로운 기준의 잣대로 보면 과거에 관행적으로 했던 것들이 전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나오는 대학 반값 등록금 요구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는 지적도 했다. 이 대통령은 "나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해야 할 역할이 '반값'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면 '어떻게 반값이 되느냐'고 밝히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면 이 기회에 새로운 대학의 질서를 다시 만들고 대학교수들도 새로운 자세로 해야 할 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학이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해왔느냐"며 "외국 대학 총장들은 기부금을 얻기 위해 1년 열두 달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우리 총장들은 뭐 하느냐. 등록금 받아서 하고 정부에 로비해서 연구비 타서 연구하는 것처럼 하고 학교에 쓰고 이렇게 지내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교과부 장관은 이 기회에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대처하면 오히려 이번 반값 등록금 파문을 통해 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말이 되면서 공직 기강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보따리 싸는 사람처럼 하면 일이 안된다"면서 "보따리는 물러나기 전날 싸면 되지 1~2년 전에 싸면 뭐가 되겠느냐. 평소에 만날 떠날 준비 하면 무슨 일이 되겠느냐"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인기를 모은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내가 보니까 무자비하더라. 딱 500명 방청객이 투표해 무조건 떨어져나간다. 두 번 해서 군말도 없어 떨어져나가면서 '아 좋은 시간을 가졌다, 고맙습니다. 이러면서 나가더라"며 "정말, 그 정신이 우리한테도 필요하다. 군말이 없다. 누굴 핑계 대느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총리실을 중심으로 최근 공직기강 확립에 나서는 것에 대해 "이건 우리 정권이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이건 사정(司正)과 관계없고 사정과 다르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공직 사회에 대한 질책은 예정돼 있지 않았던 일이다. 김두우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공직사회 문제가 최근 불거지긴 했지만 당초 예정대로 이날 워크숍은 '민생경제' 문제가 주로 이야기될 것"이라고 했었다.

이 대통령이 당초 예정과는 달리 작심발언을 한 것은 공무원 사회와 관련한 작금의 사태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현재 공직비리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장·차관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의 조치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데 대해선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이 대통령 발언은 임기 말 권력누수와 정책집행력 약화를 경계한 측면이 있으나, 대통령이 국정의 궁극적인 책임자인 만큼 3자적 관점에서 얘기하기보다는 최종 책임을 함께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동근기자

이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