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장이 감찰 직접 지시.1시간 후 최 중수부장 ‘항명’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전면전이 발발한 28일 대검 청사 주변은 한편의 서부활극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한 총장은 이날 오전부터 검찰개혁안을 검토했다. 30일 발표가 예정된 한 총장의 개혁안에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부패범죄특별수사본부 설치가 담겨 있다.대검 기획조정부와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전직 검찰 간부와 교수, 언론인을 상대로 검찰개혁 방안에 대한 의견수렴 작업이 한창이었다.

검찰 외부에서는 상당수가 중수부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보고받은 한 총장은 중수부 폐지를 개혁안에 포함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중수부는 술렁였다.

최재경 부장은 휘하의 이두식 수사기획관과 여환섭 중수1과장, 윤대진 중수2과장을 모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한 총장은 최 부장의 대책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갈등은 꽤 오래됐다. 지난 10월 최 부장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내놓은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 연계 방안에 대해 "대검 중수부를 무력화·형해화하려는 시도"라며 노골적으로 반발했을 때도 한 총장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지난 22일에는 한 총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수부 폐지를 포함해 검찰개혁을 백지 상태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최 부장이 반발했다. 이후 사사건건 두 사람은 충돌했다.한 총장은 최 부장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중수부 폐지 방침에 최 부장을 필두로 한 '특수통' 검사들의 집단 항명이 예상됐기 때문이다.한 총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의 비리를 수사 중인 김수창 특임검사를 대검으로 불렀다.

그리고 최 부장이 김 검사에게 비리 사실에 대한 언론 대응 요령을 조언했다는 문자메시지 내용과 관련해 진상을 보고받았다. 한 총장은 곧바로 이준호 감찰본부장과 안병익 감찰1과장을 불러 최 부장에 대한 감찰이 적법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요지는 최 부장의 처신이 검사가 지켜야 할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다.이때부터 감찰본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일부 검사들이 최 부장에 대한 감찰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묵살됐다.

감찰본부는 이날 오후 6시50분쯤 기자들과 만나 최 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 사실을 발표했다. 이준호 본부장은 최 부장의 행동이 '비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1시간 뒤 최 부장은 '감찰 조사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내고 "납득할 수 없다"며 사실상 항명 의사를 밝혔다.사상 처음 대검 중수부장이 감찰 조사를 받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선 검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수석검사회의를 소집한 뒤 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총장이 직을 지키기 위해 부하를 희생시키고 30년 가까이 유지해온 조직의 틀을 마음대로 바꾸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이 몰려 있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검사들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대책을 논의했다.최 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가 적법한지를 놓고도 여러 말들이 오갔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 사정수사의 사령탑인 중수부장을 품위 손상을 문제 삼아 감찰하는 것은 검찰권의 사유화"라고 했다.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상대 총장은 신망을 잃은 지 오래"라며 "자신이 나가지 않고 누가 누구한테 (책임을) 갖다 씌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솔직히 지금은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한 총장이 왜 그랬는지는 잘 생각해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최 부장의 항명에 대해 사태를 수습할 고위 간부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중수부장 자리는 대검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이자 사정의 중추"라며 "전국 검찰청을 대표하는 대검에서 조화롭게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야 하는데 자신의 문제로 총장을 끌어들이면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말했다.

법무부는 전례없는 검찰 수뇌부의 맞짱대결이 벌어지자 이날 밤 사태 수습에 나섰다. 권재진 법무장관은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감찰 또는 수사는 적법절차에 따라 수행하고 검찰개혁과 관련된 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도 있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사실상 한 총장의 검찰개혁 구상과 최 부장에 대한 감찰에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형곤 /보도2국장

김 형곤 /보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