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의무화된 생태계 영향 등 타당성 평가 없이 진행된 숲길 공사 구간이 270km를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벌목량만 20피트 컨테이너 11개 분량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관청인 산림청은 해당 사업의 타당성 평가 시행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다가 국회의 자료 요구 이후에야 뒤늦게 실태 파악에 나섰다.

문금주 의원(더불어민주당·고흥·보성·장흥·강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 산림청을 통해 전국 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진행된 숲길조성사업 174건 중 120건(69%)이 타당성 평가 없이 추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타당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숲길의 총 연장은 276km로, 여의도에서 광주까지 이르는 거리와 맞먹는다. 이 구간들은 생태계 영향이나 산림 훼손 방지 대책에 대한 검증 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숲길조성사업은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이하 ‘산림휴양법’)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으로, 산림 내에 등산·트레킹·휴양 등을 위한 숲길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2019년까지 산림청의 지자체 보조사업으로 추진되다가, 2020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어 직접 시행되고 있다.
같은 해 국회는 숲길조성사업의 지방이양에 따른 무분별한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생태계 및 지역사회 영향을 평가하는 ‘타당성 평가’를 의무화하도록 산림휴양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산림청은 이후 행정규칙인 고시를 통해 법률의 의무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산림청이 제정한 「숲길조성계획 타당성 평가 세부기준」 제4조는 공사금액 5천만 원 이하 또는 구간 길이 2km 이하 사업의 경우 타당성 평가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률상 근거가 없는 완화조항으로, 지자체들이 이를 이용해 평가를 회피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이후 숲길조성사업의 2km 이하 소규모 사업 수는 2019년까지 연평균 4.3건이었으나, 2020년 이후 16.3건으로 급증했다.
전체 사업 중 2km 이하 규모 사업 비율도 24.3%에서 56.3%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타당성 평가 없이 실시된 사업 중에는 대규모 벌목 사례도 다수 포함됐다.
영양 오십봉(37.5㎥), 지리산 호수공원(86㎥), 양양 해안생태탐방로(35㎥), 구례 용방죽정(41㎥), 평창 청옥산(16.9㎥) 등 16개 사업에서 총 362㎥의 나무가 베어졌다.
이는 20피트 컨테이너 11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문금주 의원은 “법률에서 정한 숲길조성사업의 타당성 평가 절차가 행정고시로 무력화되어선 안 된다”며
“산림청은 고시상의 예외 규정을 엄격히 제한하고, 2020년 이후 추진된 사업 전반에 대해 산림 훼손 및 난개발 여부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국회방송 호남총괄본부장 오경태 okt07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