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전국시대 말기로 접어든 시점이다. 진(秦)나라가 절대 강국으로 군림하자 나머지 고만고만한 나라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강성한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파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영토나 조공을 바쳐서라도 침략만은 피하자는 주화파, 다른 하나는 힘은 비록 약하지만 전쟁을 해서라도 주권을 온전히 지키자는 주전파이다.
이들 나라들 역시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려 여론은 분분하고 조야는 긴장과 불안에 떤다.

이 때 소진(蘇秦)이라고 하는 걸출한 유세객이 합종책(合從策)을 주장한다. 합종책이란 모든 약소국들끼리 불가침 약속을 하고 어느 나라든 진나라의 침략을 받으면 힘을 합쳐 싸우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다 큰 틀에서 주화파와 주전파의 장점을 수용한 외교안보 독트린인 셈이다.

그는 각국을 돌며 합종책을 설득해서 결국 조(趙)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연(燕) 6개국 반진(反秦)연합을 결성시킨다. 하지만 반진연합은 십수년만에 깨지고 그 와중에 소진도 암살되고 만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워낙 엇갈리는데다가 연합의 주도권을 놓고 알력이 끊이지 않은 결과이다. 애당초 합종책은 항구적인 국가보전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책일 뿐이다.

대선정국 내내 한국판 합종책, 소위 후보단일화 문제로 시끄럽더니 결국 엊그제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 측의 압박에 못 이겨 사퇴하고 말았다. 사실 말이 좋아 후보단일화이지 1위 박근혜 후보에 맞서기 위해 2.3위 후보 중에 하나를 퇴장시키는 것이다.

전형적인 정치공작적 발상이다. 애당초 새정치를 내세운 안철수 후보가 구정치 세력인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 동안 내가 되어야 한다느니 너는 안 된다느니 옥신각신 다투느라 날밤을 샌 것이 도대체 며칠 째였는가?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하는 그 어느 선진국에서 이런 해괴한 선거를 치른단 말인가? 그 바람에 정책경쟁이나 자질검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지 오래이다. 정당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는 또 다시 후퇴하고 말았다. 정치불신은 심화되고 국민의 피로감은 극에 달할 지경이다.

그 옛날 소진의 합종책은 그나마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이에 비해 후보단일화는 오히려 국가를 어지럽히고 국민의 걱정만 가중시켰다. 한국대선의 단골메뉴인 후보단일화는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설령 권력을 쥐게 된다면 어떤 행태를 보일지 빤하지 않은가? 극심한 권력갈등과 국정혼선 때문에 나라는 나락에 떨어질 것이 아닌가? 제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우리 정치에서 후보단일화같은 정치공작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