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가을떡’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추수가 끝나는 무렵 햅쌀과 햅팥으로 시루떡을 넉넉하게 지어 조상에게 올린 뒤에 이웃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리는 가을떡 덕분에 10월 상달 한달만큼은 늘 배불리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70년대 비록 가난한 시기였지만, 그래도 이웃간에는 아끼고 보듬는 훈훈한 정이 넘쳐났었다.

대한민국이 헝그리(hungry)사회에서 앵그리(angry)사회로 급속하게 변질되고 있다.” 얼마전 전경련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온 진단이다. 배고픔이 잊어질 만 해지자 너도 나도 성내고 화내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요즘 뉴스를 접하기 두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극한 갈등과 반목과 불신이 넘쳐난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는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하는 무지막지한 욕설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괴담이 횡행한다. ‘안티사이트’라는 것이 수도 없이 생겨나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을 조롱하고 매도하기 바쁘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간혹 있더라도 힘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라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6년전 ‘광우병파동’, 작년에는 ‘댓글파동’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매번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정치권의 잘못이 크다.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화합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열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얻는데 급급하지 않았던가? 소위 진영논리에 갇혀 국익마저 도외시하지 않았던가?

이제라도 정치권이 정신 차리고 본연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종교인, 교육인 등과도 적극 협조해서 근본적인 방책을 세워야 한다. ‘앵그리 대한민국’을 혁파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개조의 대목표가 아니겠는가? 가을떡 나누어 먹는 사회는 아닐지언정 서로 으르렁 대지 않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학수고대한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