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 등 이른바 ‘3대 역사기관’이 최근 10년간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에 대한 학술연구를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전남 순천갑)은 15일 국정감사에서 “3대 역사기관이 여순사건에 대해 10년 동안 연구나 보고서 발간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며 “국가기관의 무관심이 여순사건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3개 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이 수행한 여순사건 관련 연구는 전무했다. 학술회의 발표도 단 1건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의원은 “여순사건법이 제정되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정작 역사 전문기관들이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여순사건에 대한 공백과 무관심이 결국 왜곡된 극우 역사관을 확산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며 “공교육 현장과 청소년 교육에서 잘못된 역사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 여순사건 왜곡 논란 잇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여순사건을 둘러싼 왜곡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 검인증을 받은 일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여순사건을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표기해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의 성격이 인정되어 2021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교재와 교과서에서는 ‘반란’으로 서술되고 있다.

또 리박스쿨이 제작한 교육 교재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이야기」**에서는 여순사건 진압을 ‘암세포 제거’에 비유하며 진압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표현이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해당 교재는 전국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됐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8월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시각: 탈식민, 군정, 민주주의」**에서도 여순사건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을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창시자”로 평가하는 발표가 이어져,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 의원은 이와 같은 사례를 언급하며 “공공 역사기관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특정 이념에 기초한 왜곡된 역사 서술이 교육 현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국가기관이 앞장서 역사 바로세워야”

김 의원은 “여순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확인된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3대 역사기관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와 역사적 정의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순사건법 제정 이후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으로 학술연구와 교육자료 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이 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여순사건은 단순한 지역사나 이념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교훈”이라며 “역사기관이 이를 외면할 경우, 후대에 왜곡된 역사관이 고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경>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와 순천에서 발생한 국군 제14연대의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 거부로 촉발된 사건이다.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진압작전을 벌였으나, 그 과정에서 민간인 수천 명이 희생됐다.
2021년 「여순사건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진행 중이다.

CNB국회방송 호남총괄본부장 오경태 okt0797@naver.com